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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새콤꼬들 간재미… 매콤쫄깃 전복… “눈물 쏙 나부러요”
《“바다가 갈라져요. 길이 생겨요/진도에서 모도리까지/나는 여기서 기원해요. 당신과의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일본 엔카 가수 덴도 요시미(天童よしみ)에게 진도는 ‘은인’과도 같은 땅이다. 1972년 데뷔 후 이렇다 할 인기를 얻지 못하던 그는 우연히 진도 바닷길이 갈라진다는 얘길 들었다.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라 불리는 이 현상의 배경은 전남 진도군 고군면 회동리∼의신면 모도리 2.8km의 바닷길. 1년에 서너 번 물길이 열리는 진도의 대표 관광지다.
그는 1996년 ‘진도 모노가타리(珍島物語·진도이야기)’라는 곡을 발표하며 바닷물 갈라지는 이 섬을 사랑이 이뤄지는 ‘만남의 장소’라 노래했다. 이 노래가 담긴 싱글음반은 56만 장이나 팔리는 대히트를 기록했다.
그로부터 12년. 이 노래를 기억하는 진도 주민들은 이렇게 얘기했다. “아따, 그 노래가 시방(지금) 나왔다면 참전복이랑 간재미 얘기도 겁나게 많이 나와부렀을 텐데 아쉽구먼….”
총면적 430km². 3만5000명의 주민. 왈왈거리는 진돗개와 진도대교 남단에 우뚝 선 이순신 장군 동상, 그리고 아낙네들의 진도 아리랑이 이 섬의 전부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산 넘고 물 건너 찾아간 그곳에는 짠 내가 가시지 않은 해산물들이 객지 손님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지난주 ‘2008 명량대첩 축제’로 30만 명이나 되는 관광객이 다녀간 탓인지 섬은 모처럼 시끌시끌했다. 서울에서 꼬박 5시간 걸려 도착한 그곳에선 ‘진도의 맛’이 기지개를 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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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4시… 쫄깃쫄깃 간재미 무침, 잠도 깨우지라이∼
“할머니, 이게 언제 제철인가요?”
“시방 철이제. 쌀쌀할 때 제맛이어라. 아따, 고만 물어보고 먹어보랑께!”
입안에 들어간 모든 것은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새콤달콤한 양념부터 물렁뼈 통째로 씹히는 고기 느낌까지…. 몇 분간 우물거리다 한 점을 꿀꺽 삼킨 후 드는 분통함. ‘음식이 왜 이렇게 까칠해?’라는 느낌도 잠시, 자연스레 다시 젓가락을 들어 한 점 더 털어넣는다.
진도 특산물 중 하나인 ‘마름모 생선’ 간재미. 이곳에서 30년간 간재미만 팔아 온 문화횟집(061-544-6007)의 김규례(71) 사장은 간재미를 ‘입 속에서 벌이는 한판 싸움’에 비유했다. 특유의 물렁뼈와 껍질 때문에 목구멍으로 넘기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꼬들꼬들함 덕분에 씹다 보면 맛을 넘어 ‘재미’를 느낄 수 있단다.
진도 앞바다 서촌 갯벌에서 잡아 온 간재미를 요리하는 이곳의 최고 인기 메뉴는 바로 ‘간재미 무침’(3만 원). 오후 낮잠도 물리칠 만큼 새콤달콤하다. 식초와 고춧가루, 마늘 등으로 양념장을 만들어 향긋한 미나리와 함께 생간재미를 무친다. 새콤달콤한 맛을 내기 위해 참기름이나 간장은 넣지 않는 것이 맛의 비결. 입 속에서 간재미들과 한판 전쟁을 벌이느라 턱이 빠질 때쯤 흰 쌀밥에 참기름을 두른 대접이 등장한다. 간재미와 화해하란 뜻으로 ‘간재미 비빔밥’을 만들어 먹으라는 것이다.
▲영상취재 : 동아일보 편집국 사진부 김미옥기자
# 오후 7시… 갈비맛 나는 검은 매운탕 봤는감?
한약? 총명탕? 아니면 국물 많은 갈비찜?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우뚱할 무렵 주인 아저씨가 “검은 매운탕이여”라고 소개했다. 새빨간 국물도, 칼칼한 냄새도 없는데 매운탕이라니? 하지만 국물 한 숟갈 후루룩 떠먹은 순간, 짭조름한 갈비맛과 매콤하고 쫄깃한 전복이 뇌를 뒤흔들었다. 칼칼한 청양고추 향이 입안에 서서히 퍼질 때 외쳤다. “이런 맛 처음이야!”
일명 ‘전복 갈비 매운탕’이라 불리는 큰집회관(061-544-8144)의 ‘전복 매운탕’(500g 5만 원)은 진도에서 가장 독창적인 전복 요리 중 하나다. 어떻게 갈비 양념과 전복을 섞어 매운탕을 만들었을까. 해답은 양념장을 직접 만드는 박윤철(47) 사장에게 들을 수 있었다.
“5년 전 숯불갈비집으로 처음 출발했는디 나가(내가) 고기를 별로 안 좋아해서 전복 요리를 시도했제. 근디 비린내가 얼마나 나던지…. 우연히 갈비양념을 전복에 발라서 청양고추랑 끓여봤제.”
간장으로 기본 간을 맞춘 이 양념에는 사과 배 키위 등 과일을 포함한 재료가 13가지나 들어간다. 갈비양념 재듯 냉장고에 2, 3일 숙성시켜야 제 맛이 난다.
진도의 전복 별미요리가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2005년부터. ‘진도 참전복 축제’ 등을 통해 진도읍이 참전복을 진도의 특산물로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2007년에는 해양수산부가 이곳에 전복 수출 물류센터를 지었다. 전복 최대 생산지인 전남 완도와 달리 이곳의 전복은 가두리 양식을 통해 길러진다. ‘버터 전복구이’로 유명한 ‘진도 참 전복집’(061-544-1242) 장영수(49) 사장은 “다시마와 미역을 먹이며 3년 이상 양식을 한 덕에 육질이 탄탄하고 쫄깃하다”고 말했다.
▲영상취재 : 동아일보 편집국 사진부 김미옥기자
▲영상취재 : 동아일보 편집국 사진부 김미옥기자
# 다음 날 오전 11시…진도의 ‘브런치’, 떠먹는 바지락 무침
“잠시만, 그건 그렇게 먹으면 안 되지라∼.”
접시 위 빨갛게 익은 조개를 젓가락으로 집는 순간 주인 김옥란(54) 씨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시원한 맛을 제대로 보기 위해선 숟가락으로 떠먹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양념 국물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한 숟갈 떠먹으니 음료수 ‘갈아 만든 배’를 마시는 듯했다. 고소한 참기름 향은 조개의 비린내를 감췄다.
‘사랑방’(061-544-4117)의 ‘바지락 무침’(3만 원)은 따사로운 햇살 아래 진도 앞바다를 보며 여유롭게 즐기는 진도의 대표 ‘브런치’다. 시원한 맛을 내는 배즙을 기본으로 식초와 참기름 고춧가루를 넣어 새콤한 맛을 덧입혔다. 이 메뉴의 핵심은 ‘양념 빼기’. 시원한 듯 심심한 맛이 매력인 터라 텁텁한 느낌을 주는 고추장, 바지락 자체 간 말고는 소금 등 짠맛을 내는 양념도 넣지 않았다. 불등가사리로 만든 ‘가사릿국’도 맛볼 수 있다. 김 씨가 키우는 진돗개 두 마리는 이 음식점의 또 다른 명물이다. 10년 넘게 살았다는 이들은 짖지 않는다. 심지어 사람을 슬쩍 치고 갈 정도로 여유롭다. 매일 아침 명품 ‘진도 브런치’를 즐겨서일까? 이런 ‘된장녀’, 아니 ‘된장개’를 봤나!
▲영상취재 : 동아일보 편집국 사진부 김미옥기자
글=진도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사진=진도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