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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향기 농장의 정월장 담그는 풍경 |
글쓴이: 별은이뽀 | 날짜: 2009-02-01 |
조회: 37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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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뚜막, 가마솥, 황토 방, 항아리…. 아담한 농장 주인의 정겹고 푸근한 시골 살림과 구수한 시골 밥상 구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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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맛은 정월 장이 으뜸이요, 그중에도 말(馬)날에 담근 장이라고 했다. 조상들이 대대로 그렇게 알고 지켜온 풍습이라기에 무슨 심오한 뜻이 담겨 있으려니 내심 기대했었다. 그런데 웬걸,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장맛이 달게 되라고 ‘닭날’, 맛있으라고 ‘말날’을 택했을 뿐이란다. 음력설부터 시작해 첫 번째 열이튿날까지의 첫 상십이지일 上十二支日 중에서 그렇게 날을 뽑아 장을 담갔다는 것이다. 첫 말날을 놓치면 다음 말날을 잡아 담그고…. 말이 좋아하는 콩이 장의 원료이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말의 핏빛처럼 장 빛깔이 진하기를 바라는 기원을 담은 것이라고도 한다. 그럼에도 굳이 정월 장을 고집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전국 최초로 유기장 인증받은 전통의 맛 하늘 파란 날 하루를 잡아 양평에 들렀다. 거기서 달고 구수한 장맛이 그만인 장을 만들어낸다는‘가을향기 농장’ 주인을 졸라 정월 장 담그는 구경을 할 요량이었다. 날이 풀린 줄 알았더니 하늘빛은 짱짱해도 코끝에 닿는 바람은 여전히 맵다.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용천1리. 서울에서 40분 거리에 있는데도 첩첩 산으로 둘러싸인 것이 산골의 모양새를 제법 갖췄다. 아담한 황토 집 별채가 눈에 띄기에 문을 열고 들여다보았다. 바닥에 깔린 짚 위에 가지런히 늘어놓거나 새끼줄로 엮어 주렁주렁 매달아놓은 메주의 양이 만만치 않다. 메주 띄우는 방인 모양이다. 사방 벽과 바닥이 온통 붉은 황토색이다. 어쩐지 맛을 보지 않아도 이 집 장맛은 진득하니 구수할 것만 같다. 농장 주인인 김영환 씨와 부인 박애경 씨는 도시 생활을 접고 양평으로 들어간 귀농인. 남편은 자동차 회사, 아내는 은행에서 일하는 맞벌이 부부로 살다가 하루아침에 시골 사람이 되었다.
“1997년의 일이네요. 인천에 살 때였는데 하루는 강원도로 가족 여행을 떠났다가 길이 막혀 중간에 잠깐 쉬어 간다고 양평에 들렀지요. 그런데 어쩌다 보니 그대로 발이 묶여 눌러앉았어요.” 아주 인연이 없지는 않았다. 박애경 씨의 이종사촌 오빠인 신부님 한 분이 양평에서 무의탁 노인들을 돌보고 있었던 것. 여행길에 들렀다가 바쁜 일손을 도우면서 김영환 씨는 어릴 적 꿈을 떠올렸다. “고등학교 1학년 때였나? 장래 희망을 평소 생각했던 대로 써 냈다가 선생님께 아주 혼이 났어요. ‘아담한 농장 주인’이라고 썼거든요. 사내자식이 좀 더 웅대하고 그럴듯한 목표를 안 대고 장난이나 친다며 친구와 불려 나가 한 대씩 맞았죠. 그 당시 친구 아버지가 고물상을 하고 계셨는데 친구가 장난 삼아 ‘아담한 고물상 주인’이라고 쓴 거예요. 나는 진심이었는데….” 몇 번의 부부싸움 끝에 결국 아내도 남편 따라 양평 사람이 되어 생면부지의 노인들 수발 들며 살게 되었다는데 얄궂게도 밤마다 눈물바람은 박애경 씨의 친정어머니 몫이 되었단다. 그때까지 딸네와 함께 살다가 떨어진 것만도 기막힌데 팔자에도 없는 시골살이 택한 딸이 밤낮으로 ‘콩밭 매며’ 사는 게 속상했기 때문이다. 7년을 밤마다 울다가 안 운 게 이제 3년이란다. 친정어머니 역시 거처를 양평으로 옮겨 온 것이다. 공동체 생활 2년 끝에 독립한 부부는 본격적인 농부가 되었다. 어르신들이 농번기에 손이 딸려 쩔쩔맬 때마다 못자리도 봐드리고 모판도 나르며 농사를 배웠다. 얼떨결에 개를 잡았던 기억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추억.
(오른쪽) 전통 방식의 유기장 가을향기농장의 유기장은 유기농법으로 수확한 콩, 볏짚 등을 사용해 만드는 것이 특징. 예전에는 대두로만 메주를 만들었지만 요즘은 몸에 좋다는 쥐눈이콩 메주도 만든다. 거무스름한 색을 내는 게 쥐눈이콩 메주다. 된장은 해를 묵힐수록 색이 짙어진다. 하지만 오랜 기간 묵힌 간장인 청장은 오히려 맛과 색이 순해지며 향기로워 최고의 조미료 역할을 한다.
(왼쪽) 일일이 손으로 발라 완성한 황토 벽. 메주 틀의 크기도 여러 번 바뀌었다. 시골 할머니들이 만드는 것에 비해 훨씬 작은데 이 부부만의 황금비율을 찾아 끊임없이 연구한 결과이다. (오른쪽) 3년째 들어서는 묵은 된장.독 몇 개는 헐지 않고 오래도록 보관해 농장을 찾는 사람들에게 보여줄 생각이다.
“시골 살림을 하면 꼭 개를 키우게 돼요. 새끼를 낳은 집에서 키워보라며 강아지를 주는 게 시골 인심인데 첫해에 무려 다섯 마리를 받아서 키우기 시작했지요. 새벽에 나갔다 해가 떨어져야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의 연속이다 보니 개밥 주는 게 만만치 않더군요. 일에 지쳐 곯아떨어지면 개밥을 줬는지 안 줬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할 때도 많았고…. 어쨌거나 한 2년 키워 팔았는데 75만 원이나 벌었어요. 아하, 농사보다 낫구나 싶데요. 그래서 또 몇 마리 얻어다 키웠는데 이번에는 개 값이 뚝 떨어져 그야말로 ‘개 값’이 되더라고요. 마침 복날도 다가왔겠다, 동네 어르신들께 개 한 마리 내겠다고 했지요. 시골서는 복날 젊은 사람들이 고기 추렴을 해서 어르신들에게 드리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런데 개만 가져다 드리면 되는 줄 알았더니 직접 잡아야 한다더라고요. 그렇게 한 번 잡아봤어요. 다음 해에는 직접 끓이기까지 했는데 인기가 영 없어 2주일 내내 혼자 먹어치우느라 혼이 났지요.” 4년째 되던 해에 겪었던 호박 농사에 얽힌 추억도 잊을 수 없다. 애호박 풍년이 들어 값이 형편없이 떨어지더니 급기야는 8kg들이 한 박스에 5백 원을 받고 가락시장에 넘길 수밖에 없게 된 것. 차라리 안 팔고 만다며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길가에 내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공짜로 나눠주었다. 그때 호박 횡재를 한 사람 중에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해주는 시민단체인 생활협동조합(생협) 회원이 있었고 그의 소개로 생협에 납품하게 되면서 새롭게 판로를 얻게 되었다.
숨을 쉬는 옹기는 생각보다 까탈스러운 용기이다. 고무 호스로 시원하게 물을 뿌려 닦으면 좋으련만 물기가 스며 들어가 벌레가 슬고 장이 뒤집어지기 때문에 일일이 행주로 닦아가며 간수해야 한다. 볕이 좋은 날엔 수시로 뚜껑을 열어 볕을 쬐게 하고 바람을 맞힌다. 전라도 독, 경상도 독, 경기도 독 등 각 지방의 독을 사용해 장을 보관해두었는데 이제는 어떤 독이 맞는지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단다. 예전 같으면 당연히 경기도 독을 써야겠지만 평균 기온이 자꾸 올라 이제는 전라도 독으로 바꾸는 것이 맞지 않겠나 싶다고. 지구 온난화는 이제 된장과 간장독의 형태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된 것이다. 마을 대부분이 친환경 농법을 사용하는 덕분에 오염 걱정은 덜었다.
“한 박스에 5백 원밖에 못 받는 호박을 1만 원에 납품받겠다고 하더군요. 어찌나 고맙던지.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을 다는 거예요. 한 상자에 5만 원이 될 정도로 가격이 오르더라도 약속한 가격 그대로 1만 원에 달라는…. 당장 수매가 급한데 앞뒤 생각할 겨를이 있어야지요. 설마 그렇게까지 가격이 올라가겠나 싶기도 했고. 그런데 그해 추석에 한창 호박 농사가 어렵더니 한 박스에 6만 8천 원까지 올라가더군요. 조삼모사 朝三暮四라고 아까운 생각이 들긴 했지만 어려울 때 도움받은 게 어디냐 싶어 군말 없이 따랐지요.” 풋고추, 꽈리고추도 심고 하우스 지어 상추도 심어 팔면서 살림이 피는데 그제야 시골 살림 할 맛이 나더라고. 직접 수확한 콩으로 메주를 띄우고 간장이며 된장 담아볼 궁리를 한 것도 그때부터란다. “지인들에게 나눠도 주고 주문이 오면 조금씩 팔아도 봤는데 이게 목돈이 되는 거라. 때마침 태풍에 하우스가 몽땅 날아갔는데 곰곰 생각해보니 정부 지원받아 하우스 지어봤자 바람 한번 불면 끝이라는 생각이 드니 정이 떨어지는 거예요. 그때부터 하우스 걷어내고 콩 농사 지어 장 담그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지인 소유의 산에서 나무를 베어 얻어 오고 황토도 구해다 놓고 부부가 달려들어 1년간 황토 방도 만들었다. 옛날 방식 그대로 메주를 만들어 띄우고 싶은 욕심에서였다. 가공식품으로는 전국 최초로 유기장 인증도 받았다. 원재료의 90% 이상을 유기농 인증 재료를 사용해야만 하는 까다로운 조건을 통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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