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국밥 전문점 돈수백(豚壽百)
오늘은 그 남자, 국밥 한 그릇을 앞에 두고 있다. 찬바람이 불어오고 으슬으슬 감기 기운에 입맛이고 살맛이고 다 떨어져나가는 어느 오후, 그래도 먹어야 산다는 징글징글한 삶의 비릿함과 마주 앉았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시인 황지우도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 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거룩한 식사’ 중에서)라고 쓴 것을 기억한다. 혼자 먹는 밥이 대개 그러하지만 혼자 먹는 국밥은, 아니 국밥을 혼자 먹는 남자는 대부분 그렇게 안쓰러운 구석이 있다.
하지만 그 한 숟가락의 국밥, 뜨거운 국물에 풀어헤쳐진 ‘더운 목숨’이야말로 우리의 삶이며 생활이다. 그리하여 한 그릇의 국밥을 마주하던 그 남자가, 꾸역꾸역 그 국밥을 다 비우고 일어서서 홀연히 제 갈 길로 가는 것. 그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삶에 대한 성찰과 인생에 대한 고민을 한 그릇의 국밥에 담아내는 곳, 그곳이 바로 돼지국밥 전문점 ‘돈수백’이다.
돈수백의 무쇠가마솥에선 24시간 돼지사골을 우린다. 진국의 육수 맛은 결국 시간과 노력의 결과라는 말이다. 여기에 다소 심심한 느낌이 들더라도 인공 조미료를 일체 사용하지 않은 것도 여느 국밥집과 다른 모습이다. 오로지 새우젓과 다진 양념으로만 맛을 내되 그것도 손님들의 취향에 따라 별도로 준비해놓을 뿐이다. 그러니 흔히 돼지국밥 하면 연상하는 누린내나 걸쭉함은 잘못된 상상이다. 설렁탕보다 연한 맑은 국물에 냄새 없고 부드러운 육질의 돼지고기가 뜨끈한 밥과 함께 잘 말아 있는 것이 바로 돈수백의 돼지국밥 ‘돈탕반’이다. 냄새에 대해서는 거의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조심하는지라 아예 가게 자체에서조차 돼지국밥집이라는 냄새를 조금도 맡을 수가 없을 정도다.
“아무래도 서울 분들은 돼지국밥이라는 말 자체에도 거부감이 좀 있는 것 같고 또 냄새에도 민감하시기 때문에 최대한 담백한 맛을 내고 아예 돼지국밥이라는 말 대신 ‘돈탕반’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돈수백’ 이강일 대표의 설명이다. 까탈스러운 서울 깍쟁이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엿보이나, 글쎄 개인적으로는 돼지국밥은 돼지국밥으로 불려야 맛이 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여하튼 돼지고기와 돼지 사골을 우려낸 육수에는 콜라겐, 칼슘, 아미노산이 들어 있다고 하니 한 그릇의 국밥이 다만 국밥이 아니라 한 그릇의 보약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고 보니 지친 그 남자가 이 한 그릇의 돼지국밥을 먹고 오늘 하루도 꾸역꾸역 살아갈 근력을 얻은 까닭이 아무래도 여기에 있는 듯하다.
자, 그러니 오늘 지치고 외롭고 서글픈 남자들이여! 뜨거운 돼지국밥 한 그릇을 앞에 놓고 앉아 보시길, 그 국밥을 기울여 다 먹고 나면, 그래도 오늘 하루 살아갈 만큼의 근력을 얻을 것이라 믿으시라, 믿으시라.
돈수백 위치 서울시 마포구 동교동 164-24(홍대입구 4번출구)
문의 02-324-3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