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썬더버거
소금과 후추만 넣고 구웠다는데, 고기 맛이 참 센 편이다. 패티가 특별히 두꺼운 편도 아니고, 버거 밖으로 거창한 소스가 줄줄 흐르는 것도 아닌데 전체적으로 맛은 야무지고 강하다. 분석하듯 재료를 하나하나 분리해 먹어보면 그 원인을 알 수 있다. 빵은 달달하고, 고기는 간간하며, 생양파는 매콤하다. 오픈 키친이기 때문에 고기가 불에 지글대며 구워지는 모습과 소리를 동시에 경험할 수 있다. 가만히 지켜보다 보면 고기뿐만 아니라 빵도 그 불판 위에서 구워지고 있는 것 역시 목격할 수 있다. (즉, 이 집 빵은 바삭하게 구워지는 것이 아니라, 불판 위에서 따뜻하게 익혀진다. 그러니 그 외양은 동그랗게 고정되어 있지 않고 늘 열에 의해 누그러져 있다.) ‘썬더버거는 호주산 순쇠고기와 아침에 직송되는 신선한 야채만을 사용하는 정통 버거입니다.’ 매장 안에 걸려 있는 문구 또한 강렬하다. 그리고 이러한 문구 때문인지, 수제 버거치고는 꽤나 강렬하게 사람의 입맛을 자극하기 때문인지 이 집은 늘 문전성시를 이룬다. 생감자를 주문 시 바로 조리해 제공한다는 프렌치프라이는 당연히 누지지 않은 상태로 나온다. 더러 맥도날드 특유의 누진(그래서 힘이 하나도 없는) 프렌치프라이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실망스러울 수 있겠다. 칠리는 걸쭉하고 찐득한 상태로 나오며, 역시나 맛이 센 편이다.
2 스모키 살룬
뭐든 보이기 좋아하고, ‘미국식’이라는 말에 사족을 못 쓰는 이라면 이곳 버거가 제격이다. (그런데 사실 중요한 건, 이곳 버거가 ‘미국식’의 전형은 아니라는 점이다.) 일단 이곳 버거는 탑처럼 높다랗다. 짐 캐리만큼 입이 큰 사람이라 할지라도, 절대로 한 입에 이 높다란 버거를 베어 물 수 없다. 두툼한 패티며, 달걀이며, 베이컨이며, 치즈가 어쩜 그리 수직으로만 쌓여 있는지 이곳에선 햄버거를 나이프로 잘라 먹는 꽤나 우스꽝스러운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세상 어느 구석엘 가도 햄버거를 이렇게 어려운 방식으로 먹고 있는 종족도 드물 것이다. (이들은 햄버거를 마치 스테이크 썰듯 썰고 있다.) 한국식 ‘슬로 푸드’의 개념을 정확하게 받아들인 집답게 기다리는 데 한계를 느낄 정도로 꽤나 천천히 음식이 나온다. (주로 햄버거를 먹기 위해 ‘행차하신’ 손님들로 북적이기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 역시 만만찮다.) 두툼한 패티는 흡족하게 느끼한 맛을 느끼기에 적당하나, 버거 속의 양파까지 기름으로 온몸을 칠갑한 채 나오기 때문에 어디 하나 담백하거나 깔끔한 맛은 없다. 칠리는 첨벙첨벙한 맛 없이 꼬장꼬장하게 얹혀 나온다. (마치 즙을 짜낸 건더기의 모습이다.) 허나 음식을 입에 넣기 전 사진부터 찍기에 열광하는 한국형 디카족에게는 가장 만족할 만한 버거가 아닐 수 없다. 외양 하나는 정말 끝내준다.
3 감싸롱
맛이 참 순하다. 굳이 힘주어 씹지 않아도 이 집 버거의 패티는 입에서 사르르 녹을 정도로 부드럽다. 어찌 이리 고기라는 녀석이 힘이 없을까. 아주 잘게 다져 부드럽게 구워낸 패티는 맛이 착하기도 하고, 동시에 맥이 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패티만 순한 게 아니라 빵도 순하다. 깨가 송송 박힌 빵의 모습은 맑고 예쁘게 생긴 얼굴을 보는 것만 같다. 순하다 순하다 했더니, 생양파까지 순하다. 어쩜 그리 생것임에도 불구하고 달달하니 독한 맛은 나지 않는 걸까. 이 집 버거의 기조는 ‘순하고 부드러움’이 틀림없다. 유일하게 대가 센 녀석이 있다면, 양배추 대신 깔린 겨자 잎이다. 대부분 버거에 등장하는 양배추(혹은 양상치) 대신 이 집 버거엔 색이 아주 선명한 겨자 잎이 들어 있다. 씹으면 억세서 언뜻 ‘잎사귀를 먹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다. (양상치는 사각사각한 대신 색이며 모양에서 겨자 잎에 밀린다.) 토마토는 아주 빨갛고, 달걀과 치즈는 굉장히 노랗고, 겨자 잎은 엄청나게 선명한 녹색이기 때문에 ‘삼색의 조화’가 가히 아름답다. 모든 버거에 (프렌치프후라이가 아닌) 허브가 뿌려진 웨지 감자가 몇 조각 나온다는 것이 특징. 역시나 맛이 순하고 부드럽다. ‘핸드메이드 버거’라는 문구를 아예 간판에서부터 달고 있는 집이기 때문에 버거도, 실내 인테리어도 모두 따스하고 아늑하다. 여학생 몇몇이서 카페 겸 찾아도 좋을 것 같다. 그러니 버거만 먹고 서둘러 나오지 않아도 된다.
4 후터스
맛이 참 애매하다. 고기 냄새로만 치면 가장 ‘미국식’이지만, 맛의 기준으로 치면 양질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즉, 흔히 ‘미국식 버거’를 이야기할 때, 이곳의 버거는 가장 근접한 맛일 테지만, 그게 꼭 최고의 맛은 아니라는 얘기다. 대표 버거인 ‘와규 버거’의 패티는 정말 고기 냄새가 강하다. 호주산 ‘와규’라는 이 고기는, 수입육 특유의 맛과 향을 톡톡히 발휘한다. (흔히 ‘와규’라 함은 일본의 대표적인 검은 소를 일컫는데 이 ‘와규’는 연하고 부드러워 샤브샤브나 스테이크 용도로 많이 먹는다. 하지만 이 ‘와규’가 버거의 패티로 쓰이다 보니, 사실 그 부드러운 매력은 느껴지지 않는다.) 적당히 구워진 빵과 고기, 그리고 적당히 신선한 양상치와 토마토, 양파 등이 들어갔다는 점에서 이 집 버거는 크라제 버거와 비슷하다는 인상을 선사한다. 하지만 크라제 버거에 비해 고기 맛이 강하고, 양상치는 잘게 다져진 상태로 얹혀 나온다. 깔끔하게 정리된 모양새와 맛으로 치자면 크라제가 한 수 위고, 그러거나 말거나 미국식 버거의 본색을 보여주겠다는 면으로 치자면 이 집 버거가 앞선다. (수제 버거 집 치고) 독특한 것은, 돌돌 말린 채로 튀겨져 나오는 프렌치프라이가 마치 맥도날드의 그것과 비슷한 맛을 선사한다는 것. 소금기가 간간한 이 집 프렌치프라이는 그 두께나 힘없음이 더도 덜도 아닌 맥도날드의 그것과 같다.
5 네쉬빌
일단 외관상으로는 투박하다. 보잘것없어 뵈는 접시에 ‘뚜껑(빵의 윗부분)이 열린 상태’의 버거가 나온다. (아마도 케첩, 마요네즈, 겨자 소스, 바비큐 소스 등이 각 테이블에 병째로 있기 때문에 각자 알아서 뿌린 뒤, 덮어 먹으라는 뜻 정도 되겠다.) 패티는 “미디엄? 오어 웰돈?” 하며 각자의 취향을 따로 주문받는다. (그러나 미듐을 주문해도 웰돈 수준으로 바싹 구워져 나온다.) 겉은 보잘것없으나, 일단 패티가 불에 직접 구워져 나오기 때문에 씹는 순간 ‘불 맛’을 느낄 수 있다. 패티를 자신 있게 가로지르는 석쇠 자국이 이를 증명한다. 부드럽거나, 촉촉하거나, 달콤한 친절한 맛은 아니다. 뻑뻑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강직하다. 씹는 맛이 있는 반면, 온갖 소스와 치즈와 야채가 고루 믹스돼 한 몸이 되어버린 연약한 여성스런 버거와는 전혀 다른 무뚝뚝함이 이 집 버거의 기조다. 기름기가 뚝뚝 흐르지도 않고, 야채며 빵이며 소스가 각각 따로 구비되어 나오기 때문에 정겨움은 없는 반면 맛이 깨끗하다. 이 집에서 유명한 건 사실 ‘칠리 치즈 버거’인데, 역시나 뚜껑 열린 버거 위에 칠리가 한껏 부어져(얹혀 있다는 표현은 절대 어울리지 않는다) 나온다. 칠리의 양은 인심 좋게 꽤 넉넉하며, 레드 빈과 다진 고기는 알갱이가 섞여 있다. 버거의 덩치가 그렇게 큰 편은 아니지만, 성격상 우직한 남성에게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