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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순 회무침 한입, 입맛 깔깔할 때 竹이네

글쓴이: 앨리스  |  날짜: 2009-04-18 조회: 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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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 순 회무침 한입, 입맛 깔깔할 때 竹이네

담양 죽순

‘화살도 싫고 창도 싫다/마디마디 밥 한 그릇 품기까지/수천 년을 비워왔다/합죽선도 싫고 죽부인도 싫다/모든 열매들에게 물어봐라/지가 세상의 허기를 어루만지는/밥이라고 으스대리니,/이제 더는 무엇이 되고 싶지 않다/땔감도 못되는 빈 몸뚱어리가/밥그릇이 되었다 층층 밥솥이 되었다’

죽순은 ‘대나무의 태(胎)’이다. 죽태(竹胎)다. 그것은 어느 날 홀연히 땅속에서 솟아올라 쑥쑥 자란다. 하루에 손 뼘만큼 자라는 것은 일도 아니다. 비온 뒤엔 콩나물처럼 쭈욱∼쭈욱∼ 키가 큰다. 우후죽순(雨後竹筍)이다.

대나무줄기는 땅속에서 추운 겨울을 난다. 봄이 되면 그 몸에서 고깔모양의 연두색 싹이 돋는다. 화르르 초록 등불이 켜진다. 꿈틀꿈틀 생명의 힘이 넘쳐난다. 그 생명력이 사람들에게 활력을 준다. 녹작지근하고 나른한 봄에 그만이다.

죽순은 성질이 차가워 열을 내리게 한다. 가래 기침 트림을 없애준다. 정신이 번쩍 나게 만든다. 피를 맑게 하고 스트레스를 날려준다. 술꾼들 띵한 머리에도 좋다. 섬유질이 많아 변비 해소에 도움이 된다.

죽순은 늦은 봄인 4월부터 캔다. 키가 40cm 정도일 때가 알맞다. 너무 어리면 무르고, 너무 커도 뻣뻣해서 먹기 쉽지 않다. 죽순을 캐면 솥에서 데치듯 삶아야 한다. 삶을 땐 반드시 쌀뜨물을 넣어야 죽순의 떫고 아린 맛을 없앨 수 있다. 큼큼하고 구수한 옥수수 삶은 냄새가 나면 거의 삶아졌다고 보면 된다.

죽순요리는 회무침이 으뜸이다. 쫄깃쫄깃 고기 씹는 맛인가 하면, 아삭아삭 씹는 소리에 귀까지 황홀하다. 데친 죽순을 찬물에 한 번 씻어내고 죽죽 찢어, 파, 다진 마늘, 초고추장과 함께 조물조물 버무리면 된다.

죽순볶음은 달군 프라이팬에 참기름 한 번 두른 뒤, 마늘 깨소금 간장으로 간을 맞추면서 죽순을 볶으면 된다. 된장찌개 끓일 때 죽순과 버섯을 넣으면 꼬들꼬들한 맛이 일품이고, 갈치조림에 넣으면 비린내가 싹 가신다. 죽순을 얇게 채 썰어 쇠고기와 함께 버무린 죽순육회도 한우 살의 부드러움과 죽순의 쫄깃한 맛이 어우러져 황홀하다.

어릴 적 먹었던, 나무꼬챙이에 죽순과 돼지고기를 끼워 구운 죽순산적은 이제 구경할 수조차 없다. 동네 어르신들은 술안주로 죽순을 솥뚜껑에 구워 드셨다.

죽순장아찌 죽순냉채 죽순들깨조림 죽순초밥 죽순밥 죽순채볶음 죽순표고볶음 죽순찜 죽순굴탕 돼지고기죽순볶음…. 질긴 뿌리 쪽은 장아찌로 좋고, 뾰족한 위쪽은 연해서 회무침이나 볶음에 알맞다.

죽순요리의 본향은 누가 뭐래도 전남 담양이다. 담양의 정자 소쇄원과 식영정 사이의 지실마을 울림산장(061-383-0779)이 이름났다. 해남산 참붕어에 해묵은 무청시래기와 죽순이 어우러진 죽순붕어찜, 기름을 뺀 오리고기와 죽순을 다시마육수로 끓여내는 죽순오리전골, 새콤달콤한 배 고추장으로 버무린 죽순회무침 등 마니아들의 발길이 붐빈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매실장아찌, 밤 조림, 대숲 장독에 4년 동안 숙성시킨 묵은 지, 3년 묵은 파김치, 고추장에 묻어 말린 감 등도 입에 쩍쩍 달라붙는다. 무를 손가락 크기로 잘라서 말린 뒤, 그것을 뻥튀기에 튀겨서 끓는 물에 우려내는 물맛도 일품이다. 당뇨에 좋다는 게 주인장 귀띔. 지실마을은 송강 정철의 외가마을로도 유명한 곳이다. 수백 년 된 동네 돌담길을 어슬렁어슬렁 산책하는 맛도 또 다른 즐거움이다. 죽녹원 입구의 명가죽순요리(061-381-3822)도 있다. 죽순갈치조림 죽순병어조림이 맛있다.

‘밤새도록 댓잎에 별빛 어리듯/그슬린 등피에는 네 얼굴이 어리고/밤 깊어 대숲에는 후득이다 가는 밤소나기소리./그리고도 간간이 사운대다 가는 밤바람소리.’(나태주 ‘대숲아래서’ 부분)

대나무는 속이 비어서 더욱 꼿꼿하다. 바람이 불어도 욕심이 없어서 유연하다. “쏴아∼” 대숲바람소리에 별이 우수수 떨어진다. 한겨울 대빗자루로 떨어진 별들을 쓸어다가 대밭에 심었더니, 그 별 싸라기들이 새봄 땅속에서 연한 연두색 고깔 순을 우우우 내민다. 죽순은 지상의 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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